책소개
레싱은 볼펜뷔텔 도서관장으로 일하면서 함부르크 시절에 친교가 있던 라이마루스의 유고를 출판·공개한다. 이 글은 이신론(理神論)의 자연적인 신개념에 입각해 기독교의 계시 개념을 위시한 교리 전반을 부정하는 내용이다. 이런 글이 신학의 통용어인 라틴어가 아니라 아무나 읽을 수 있는 독일어로 공개된 데 경악한 기독교 측에서 가만있을 리 없다. 괴체 목사가 교계 대변자로 나서 레싱이 공개한 글을 격렬히 비난할 뿐만 아니라, 저자의 입장을 옹호하는 데에 레싱의 진정한 의도가 있다고 인신공격을 가해 오자, 레싱도 그에 대한 대응으로 여러 글을 발표한다. 이렇게 레싱과 괴체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전개되자, 기독교계는 레싱의 고용주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압력을 가해 레싱에게 부여했던 검열 면제 조치를 철회하게 만든다. 이제 글을 마음대로 발표할 수 없게 된 레싱은 그 논쟁을 바탕으로 희곡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고, 이렇게 해서 생성된 작품이 바로 <현자 나탄>이다. 괴체는 계시에 의한 성서와 교리는 절대 진리이므로 검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레싱은 <현자 나탄>에서 그런 주장이 독선이고, 그런 독선에서 십자군 전쟁 같은 인류의 불행이 발생했음을 상기시키면서 그 대안으로 박애와 관용을 내세운다. 이 작품의 무대는 십자군 전쟁 시기의 예루살렘이지만 그 메시지는 18세기 후반기의 독일인뿐 아니라 지구촌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유효하다. 왜냐하면 종교적·민족적 갈등에 의한 분쟁은 12세기에도 18세기에도,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도 끊임없이 발생해서 인류의 평화로운 공존과 행복을 위협하고 파괴하기 때문이다. 현실이 암울할지라도 우리는 <현자 나탄>이 제시하는 희망의 비전에 주목해야 한다. 나탄이 온 가족을 잃은 아픔을 딛고 일어나서야 비로소 지혜와 관용의 화신이 된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지금 흉악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불관용은 어쩌면 관용의 전령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관용의 세계는 거저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관용을 실천할 때 비로소 도래한다는, 즉 우리 자신의 의지와 실천에 달렸다는 재판관의 충고를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200자평
시민 비극의 창조자, 독일 근대 희곡의 아버지로 칭송되는 레싱의 대표작. 기독교인에게 몰살당해 일곱 자식을 잃고도 기독교인의 아이를 양녀로 받아들여 정성을 다해 기르는 나탄. 그는 모진 시련을 겪었지만 특정 종파나 민족을 초월해 인간성과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야 함을 주장한다. 민족적·종교적 분쟁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이 작품이 제시하는 인도주의와 관용의 정신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지은이
고트홀트 레싱(GOTTHOLD E. LESSING, 1729~ 1781)은 1729년에 태어나 라이프치히 대학교와 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공부한다. 목사인 부친의 뜻에 따라 신학 공부를 시작하나 문학에 끌려 신학자의 길을 접고 일찍이 문필 활동과 언론계에 투신한다. 평생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다가 1781년 눈을 감는다. <미스 사라 샘슨>, <미나 폰 바른헬름, 또는 군인의 행운>, <에밀리아 갈로티>, <현자 나탄> 등이 대표작이다. 그 밖의 주요 저술로는 ≪비극에 관한 서신 교환≫, ≪문학 편지≫, ≪라오콘: 미술과 문학의 경계에 관하여≫, ≪함부르크 연극론≫, ≪인류의 교육≫, ≪에른스트와 팔크: 프리메이슨 회원을 위한 대화≫ 등이 있다. 레싱은 독일 계몽주의 시대에 문학평론가, 이론가, 작가로서 또 언론인으로서 문화 전반에 걸쳐 뛰어난 성취를 이루었고, 독일 문학이 낙후성을 극복하고 세계문학의 정상권으로 도약하는 준비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독일 최초의 전업 작가, 시민 비극의 창조자, 전제군주제와 교조적 루터교의 비판자, 시민계급의 선구자, 관용과 지혜의 화신 나탄의 창조자, 독일 근대 희곡의 아버지 등으로 칭송된다.
옮긴이
윤도중(尹度重)은 서울대학교 문리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뮌헨 대학교, 본 대학교, 마인츠대학교에서 수학한 뒤, 주한독일문화원, 전북대학교를 거쳐 현재 숭실대학교 독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 숭실대학교 인문대 학장을 역임했으며, 레싱, 괴테, 실러 등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저서로는 ≪레싱: 드라마와 희곡론≫(2003), 역서로는 ≪괴테 고전주의 희곡선≫(1996), 카를 추크마이어의 희곡 ≪쾨페닉의 대위≫(1999), 레싱의 희곡 ≪미나 폰 바른헬름, 또는 군인의 행운≫(2008), ≪에밀리아 갈로티≫(2009) 레싱의 저서 ≪라오콘: 미술과 문학의 경계에 관하여≫(2008)와 ≪함부르크 연극론≫(2009), 프란츠 메링의 저서 ≪레싱 전설≫(2005), 프리드리히 헤벨의 비극 ≪마리아 마그달레나≫(2009)와 ≪유디트≫(2010), 클라이스트의 희곡 ≪홈부르크 공자≫(2011) 등이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3
제1막······················5
제2막······················51
제3막······················97
제4막·····················149
제5막·····················195
해설······················241
지은이에 대해·················247
지은이 연보··················249
옮긴이에 대해·················252
책속으로
나탄: 민족이란 대체 뭡니까? 기독교인이나 유대인은 인간이기 이전에 기독교인이고 유대인인가요? 아! 인간인 것으로 족한 사람을 기사님한테서 하나 더 발견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